최근 충남 천안에 80㎿(메가와트)급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립 소식이 전해졌다. 단순한 청사진을 넘어 부동산 및 데이터센터 개발사인 금강이 한국전력과 전력 사용 계약까지 이미 마친, 꽤나 실체가 뚜렷하고 속도감 있는 프로젝트다. 이번 협약을 통해 충남도를 단숨에 대한민국 AI와 데이터 산업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김태흠 지사의 기대감도 묻어나지만, 여기서 정말 주목해야 할 건 200여 명의 고용 창출이나 200억 원에 달하는 지역경제 유발 효과 같은 지엽적인 숫자가 아니다. 이제 AI가 뜬구름 잡는 테마를 벗어나, 거대한 전력을 빨아들이고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실물 인프라로서 우리 곁에 묵직하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세계에서는 이토록 AI가 무서운 속도로 영토를 넓혀가고 있지만, 정작 주식시장의 셈법은 조금 다른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크로 컴파스(Macro Compass)의 알폰소 페카티엘로의 분석을 빌리자면, 증시가 여기서 한 단계 더 레벨업하기 위해 굳이 또 다른 ‘AI의 기적’이나 최근 일주일간 몰아친 스페이스X(SPCX) 급의 광풍이 필요하지는 않다. 오히려 시장의 체력 자체가 특정 섹터에 의존하지 않고 전반적으로 넓고 튼튼해지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페카티엘로가 그리는 현재의 매크로 환경은 한마디로 ‘골디락스’에 가깝다. 인플레이션을 걷어낸 실질 성장은 탄탄하되 지나치게 뜨겁지 않고, 근원 물가는 얌전하게 통제되고 있다. 여기에 연준(Fed)은 금리를 동결하거나 기껏해야 한 차례 인상에 그치며 궤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예측 가능성을 시장에 쥐여줬다. 1990년 이후 이런 삼박자가 맞아떨어졌을 때 S&P 500 지수는 6개월 평균 9.5%라는 쏠쏠한 수익률을 안겨줬다. 이는 어떤 무작위 6개월 구간을 골랐을 때의 평균 수익률(5.8%)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인 데다, 랠리의 승률은 무려 96%에 달했다. 주식시장은 완벽한 무균실 상태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적당한 수준의 성장과 엇박자 없는 정책의 훈풍만 불어줘도 상승장을 연출하기엔 충분하다. 이 프레임워크대로라면 목요일 종가 기준으로 향후 반년 안에 S&P 500이 8,000에서 8,150 선까지 대략 8~10%가량 더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미국의 막대한 공공부문 적자와 민간의 신용 창출이라는 돈 복사기(money-creation machine)가 여전히 뜨겁게 돌아가며 명목 성장을 밑단에서 떠받치고 있다. 동시에 고용 시장의 각종 지표들은 과열을 식히며 치유되는 정상화 수순을 밟고 있고, 그간 끈적했던 주거비 인플레이션의 둔화가 덩달아 고개를 드는 상품 물가의 상승 압력을 적절히 상쇄해 주고 있다. 이런 판국이니 연준이 굳이 억지로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 들 이유도 없다. 그저 투자자들이 이미 예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매파적인 태도로 시장을 기겁하게 만들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비록 워시(Warsh) 연준 의장의 첫 회의에서 성명서가 짧아지고 포워드 가이던스가 줄어들며 시장이 찰나의 불안감을 느끼긴 했지만, 페카티엘로의 긍정적 전망이 기반하고 있는 큰 틀에서의 예측 가능성 자체는 아직 훼손되지 않았다.
최근 시장에서 뚜렷하게 포착되는 섹터 로테이션의 흐름을 보면 이러한 매크로적 시각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6월 증시의 랠리를 이끈 리더보드 최상단에는 그간 시장의 멱살을 잡고 끌어올렸던 메가캡 위주의 기술주(XLK)나 통신(XLC), 임의소비재(XLY)가 없었다. 심지어 에너지(XLE) 섹터와 함께 이들은 철저히 소외되며 뒤처졌다. 그 빈자리를 치고 올라온 건 다름 아닌 금융(XLF), 산업재(XLI), 소재(XLB) 섹터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천안에 들어서는 거대한 80㎿급 AI 데이터센터 역시 결국은 방대한 건축 자재와 전력망, 묵직한 산업재의 뒷받침 없이는 첫 삽조차 뜰 수 없는 일이다. AI라는 거대한 테마가 마침내 하드웨어적인 실물 경제로 내려와 산업 전반에 온기를 돌게 만들고, 그 낙수효과가 증시의 지형도마저 가장 본질적인 펀더멘털을 향해 재편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