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와 10년간 7억 달러(약 9100억 원)의 초대형 계약을 맺은 일본 출신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29)가 연봉 대부분을 계약 종료 이후에 받기로 한 배경이 재조명되고 있다. 메이저리그뿐 아니라 전 세계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고액 계약이지만, 그는 실제로는 계약기간 동안 매년 200만 달러씩만 수령하고, 나머지 6억8000만 달러는 계약 종료 이후 10년에 걸쳐 나눠 받는다.
전체 계약금 중 약 97.1%를 나중에 받기로 한 이례적인 결정은 오타니의 개인 명예와 팀의 전력 보강을 동시에 고려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이런 방식의 계약은 선수 입장에서는 명예를 지키면서도 구단에는 연봉 부담을 줄여 전력 보강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
연봉 유예, 메이저리그 전통의 계약 방식
연봉 유예 방식은 메이저리그에서 오래된 계약 형태다. 최초 사례는 1984년 브루스 수터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체결한 계약이며, 이후 은퇴한 보비 보니야, 켄 그리피 주니어 등도 유사한 방식으로 연봉을 받아왔다. 보통 유예 금액에는 이자가 붙지만, 오타니는 이자 없이 매년 6800만 달러씩 10년간 수령하는 조건을 수용했다.
현행 메이저리그 단체협약(CBA) 제16조는 연봉 유예 금액과 비율에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에, 이론상 전액 유예도 가능하다. 다만, 오타니처럼 97.1%나 유예한 사례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전에는 무키 베츠가 다저스와의 계약 중 일부를 유예했지만 규모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구단 사치세 절감… 전력 보강 여력 확대
오타니가 이 같은 조건을 수용한 핵심 이유는 구단의 사치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메이저리그는 일정 연봉 총액을 넘기면 구단이 사무국에 추가로 세금을 내야 하는 구조다. 오타니의 경우, 연봉의 대부분이 유예되면서 사치세 계산상 연봉은 7000만 달러가 아닌 할인 적용된 4600만 달러로 책정된다. 다저스 입장에서는 약 2400만 달러의 여유 자금을 확보해 추가 전력 보강이 가능해졌다.
실제로 다저스는 올 시즌을 앞두고 탬파베이에서 활약한 타일러 글래스노와 5년 1억3650만 달러에 계약했고, 일본 대표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와는 12년 3억2500만 달러의 초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우승이 목표’라는 다저스의 철학과 일치
오타니는 이전 소속팀 에인절스에서 한 번도 포스트시즌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는 “다저스는 10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하고도 한 번밖에 우승하지 못했다고 실패로 평가받는 팀이다. 그만큼 우승만이 목표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이적 배경을 설명했다. 즉, 개인보다는 팀의 성과를 위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제도의 허점과 우려… 하지만 안전장치도 존재
연봉 유예 방식이 사치세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부 구단주들은 연봉 유예가 선수 몸값을 부추긴다며 제도 폐지를 주장했지만, 선수 노조는 은퇴 후 생활을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현재까지는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구단이 파산할 경우 선수들이 연봉을 못 받을 위험도 있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해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계약 체결 2년 뒤까지 유예 금액을 확보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다저스는 2026년 7월 1일까지 오타니에게 지급할 6억8000만 달러를 확보해야 한다.
국내 사례와 도입 가능성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공식적인 연봉 유예 계약 사례는 없지만, 반대로 연봉을 앞당겨 지급한 경우는 있다. 대표적으로 SSG 김광현은 복귀 첫해에 전체 계약금의 절반 이상을 1년 차 연봉으로 받았다. 이는 연봉 총액 상한선을 기준으로 삼은 샐러리캡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연봉 유예 계약을 제도권 내로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통해 구단과 선수가 이면 계약의 유혹에서 벗어나고, 공정한 리그 운영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타니의 계약은 단순한 거액 계약을 넘어, 메이저리그의 재정 구조와 팀 철학, 선수의 가치관까지 엿볼 수 있는 복합적 결정이었다. 국내 프로야구계에도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